그래픽 디자인과 애견 란만
제 반려견 이름은 ‘란만’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데도 서로 소통하고, 함께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죠. 가끔은 그게 참 신기하게 여겨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편할지도 몰라요. 사람과는 말을 주고받다 보면 오히려 어색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개와는 그런 일이 없어요.
이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소통하는 느낌은, 디자인을 할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가령 디자인의 신이 있다면, 제가 “이게 맞나요?”라든지 “이거 멋지지 않아요?”라고 물어봐도 당연히 답해주지 않겠죠. 결국 제 스스로 확신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디자인은 마치 동물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늘 그걸 반복하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부모님의 간판 가게에서 싹튼 디자인에 대한 관심
저희 집은 간판 가게를 운영했어요.
루모이 같은 시골 마을에서 자영업을 하셨죠. 1층은 작업실, 2층은 주거 공간이었는데, 아버지가 간판 위에 앉아 한 글자씩 손으로 페인트를 칠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나중에는 커팅 시트가 주류가 되면서, 아버지가 사용하는 도구도 붓에서 마우스로 바뀌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일을 지켜봐서인지, 자연스럽게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대학 4년 동안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홋카이도 공업대학(현 홋카이도 과학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생활 중 그래픽 디자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고, 졸업을 기다리지 못하고 중퇴해서 디자인 전문학교로 다시 들어갔어요.
삿포로에서의 생활은 루모이에서는 볼 수 없던 화려함으로 가득했어요. 특히 거리 곳곳에 있는 음악 이벤트 플라이어들이 정말 멋져 보였고, 집에 가져와 방 벽에 붙여 놓으며 수집했습니다. 제가 그래픽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완전히 이것 때문이었어요.
운 좋게도 아버지가 작업에 Adobe Illustrator와 Photoshop을 사용하고 있어서, 제 노트북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셨죠. 기본적인 사용법도 아버지께 배워서 자주 따라 하듯이 놀면서 무언가를 만들곤 했어요. 제가 그래픽 디자인에 빠져들었을 때 바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집이 간판 가게였기 때문이죠.


더 높은 목표를 향한 디자인과의 만남
제 커리어의 시작은 인쇄 회사의 디자이너로 시작했어요. 디자인 자체보다는, 디자인을 하면서 급여를 받고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졌던 그래픽 디자인이 사회에서 이렇게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기뻤어요.
그 후 우연히 유명한 디자인 듀오 ‘와비사비’가 속한 디자인 사무소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곳에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분위기가 있었죠. 특히 디자인 컴피티션 등 외부 평가에 도전하는 분위기였어요. 상을 목표로 하면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생기고, 서로 경쟁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죠. 그것이 일에 대한 접근 방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어요. 더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지향하는 환경에서 제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제 디자인에 대한 자세와 생각이 크게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JAGDA 신인상까지의 여정
처음에는 디자인 컴피티션에 참가하는 것에 저항감이 있었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고 나니 점점 즐기게 되었어요. 다행히 홋카이도 내에서는 성과를 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자신감도 생겼죠.
하지만 JAGDA 신인상은 전국 규모이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다는 느낌이었어요. 가볍게 목표로 삼을 수 없는 그런 상이었죠. 하지만 저라는 디자이너가 이 상과 인연이 있는지 없는지, 두려웠지만 분명히 알고 싶었어요.
당시 소속된 디자인 사무소 사장님의 추천과 지원 덕분에 용기를 내어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면서 39세 이하라는 연령 제한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지만, 38살에 4번째 도전 끝에 드디어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은 제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스즈마이에서의 프리랜서 생활
프리랜서가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었죠.
디자인은 여전히 좋아해요. 하지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그래서 프리랜서가 된 것은 그 선택의 일부이기도 해요. 이사를 하면서 주변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지금 사는 곳은 ‘스즈마이’라고 하는데, 아이누어로 ‘강’을 의미한다고 해요. 마침 제 사업명을 강으로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작업실에서 바로 가까운 곳에 강이 있는 것도 좋습니다. 프리랜서가 되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강의 흐름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게 돼요. 강은 우리가 잠든 동안에도 흐르고, 아침에 봐도 게으른 모습이 없으니까요. 그런 환경이 제게 큰 위안이 됩니다.
지금은 집과 작업실이 하나로 되어 있어서 가족과의 거리가 가까워졌어요. 이게 장단점이 있지만, 때로는 그게 제게 큰 힘이 되기도 해요. 2층 다락방을 작업실로 쓰고 있는데, 계단만 내려가면 5초 만에 아내와 딸, 그리고 반려견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마치 어디든 문을 열고 한 번에 이동하는 느낌이죠.


디자인을 통한 기여
광고 작업을 하면서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재밌고 즐겁게 전달하고 싶어요. 단지 보고 읽는 것을 넘어, 경험으로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디자인을 통해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고, 저 자신도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리고 클라이언트도 그 행복을 느끼도록 계속 노력하고 싶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사회와 연결된 끝에, 예를 들어 제 딸이 제가 한 작업을 어디선가 보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 루모이에서 아버지가 만든 스낵바 간판을 보며 “저건 우리 아빠가 만든 거야”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저처럼, 딸에게도 아빠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를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Director, DP : Tetsuya Uesugi Assistant Director : Mahiro Sato, Keita Muraki Sound Mixing : Tsuyoshi Sakado
Ryuichi Kawajiri
홋카이도 루모이 출신, 삿포로 거주 그래픽 디자이너. 디자인 주식회사를 거쳐 2023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 중. 패션 빌딩 아트 디렉션과 CD 재킷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JAGDA 신인상과 대만 국제 그래픽 디자인 대상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다.